사골 질문들, 오늘은 쉬어갈게요.
안녕하세요, .
5월의 첫 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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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와버렸어요.
하루는 너무 쉽게 지나가는데
고난이란건 정말 영원한 것 같아요 :)
이런게 상대성 어쩌구 일까요.
시간아 제발 정신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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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날에는 메일을 보내지 않습니다.
근데 이번 주는 3일 밖에 없더라구요.
한 주 넘길까 고민하다가
그저 쉬어가는 느낌으로 비어있는 글을 보냅니다.
그럼 오늘도
바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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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x
1. 핑퐁놀이
그래서 왜 그래서 어떻게
2. 안주는 육회
차가운 안주를 좋아해요
3. 로맨스 코미디
각자 영화보러 갑시다
4. 물음표 살인마
하나씩 곱씹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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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비어있는 여백은
가장 큰 디자인이에요.
이번 메일은 어제 술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무수면 챌린지도 아니면서,
집 가서 자야 다음 날이 있을텐데 기여코 알코올을 마시러 나왔어요.
둘이서 6병을 마셨고 그 위력은 ... (더보기)
누군가는 완성되지 않은 관계가 제일 재밌대요.
저는 공감하기 힘들었지만-
또 누군가는 자유롭게 사는게 무섭대요.
이 부분은 격하게 동의!
동기가 중요한 사람과, 결과가 중요한 사람이 만나면 영원히 말할 수 있어요. 리터럴리 영원히. 제가 결과를 말하면 K는 ‘왜?’ 이유를 묻고, K가 이유를 말하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결과를 물으면서 돌고 도는.
한 두번 본 사이도 아니면서,
그렇게 서로 질문만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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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bottle
첫번째 질문, 무슨 색 좋아해?
아!
제일 곤란한 질문부터 받아버렸습니다.
저는 사실 좋아하는 색이 없는 것 같아요.
굳이 고르자면 블랙이지만서도.
블랙은 색상이면서 굳이 색으로 따지자면 아니거든요.
색감과 채도가 없이 오직 명도만을 가진 무채색의 밝기가 0인
그냥 그늘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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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덜 취한 상태라
위의 모든 작은 문장을 삼킨채
검정색!
다음 질문 주세요.
하고 넘겼답니다.
두 번째 질문,
인생의 현 시점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안주는 육회에 닭곰탕을 먹었는데요.
싱싱한 고기보다, 맛있는 질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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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말했어요.
지금 오월의 날씨 같아. 마냥 행복해
행복하고 행복만 있어.
평온하고, 심심하고, 안정적이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게 행복이라는걸 느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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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설익은 초여름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덜 살아서
약간은 미성숙한 떫음이 있지만 그 자체로 자극적인 맛.
그래서 기대되는,
땀 흘릴 여름을 위해 민소매와 반바지를 장만하며
아직은 휴가 계획을 짜면서 설레하는,
그리고 끝나는걸
무서워 하지 않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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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차례.
그래서 는 지금 어떤 계절이에요?
입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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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bottle
세번째 질문, 본인이 영화 장르라면?
K는 다큐멘터리래요.
안정적인걸 추구하는 성향이 너무 잘 보이는 대답이라 웃겼습니다.
나는 평온하고 느린 템포의 다큐멘터리 같아.
아주 약간의 불안함과 두근거림만 주고
다시 평온한 일상을 찾는.
‘아 이번에도 무사합니다.’
라는 나레이션이 깔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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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어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로맨스 코미디
난 모든 영감이 사랑이고,
이상한 도전들을 살펴보면 죄다 좋아하는 사람 때문이었어.
보통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긴 하지만...
그리고 드론 시점에서 보면 뭐든 웃기던데.
그래서 코미디 한 스푼 넣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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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을 곰곰히 들은 K의 추가질문
그럼 너가 생각하는 사랑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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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bottle
N번째 질문, 사랑 밸런스 게임
훅들어온 질문에 놀라서
술을 한 병 더 시켰구요.
그리고 가볍게 갈 수 있게 밸런스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 내가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좋아하는 사람
-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한지 vs 줄 때 행복한지
- 잘 잤어? vs 밥은 먹었어? 어떤게 더 관심인지
- 좋은 꿈 꿔 vs 꿈 없는 밤 어떤게 더 로맨틱
- 말 vs 행동 중 뭐가 먼저라고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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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 하나만 제 답변을 공유드리자면,
네번째 질문에서 꿈 없는 밤이 더 로맨틱합니다.
저는 항상 꿈을 꿔서 곤란하거든요.
아 근데 꿈 없는 밤 되라는 말을 할 정도의 사이면
이미 끝 아닌가 싶으면서도-
어쨌든 , 이런 질문 재밌죠!
나가서 써먹어봐요. 시간 순삭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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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th bottle
메모장에만 남아있는 질문들
사실 이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대신 진짜 맛있는 질문들은 메모장에 오타 가득한채로 남겨놨거든요.
질문 뭉치 공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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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 단어에 얼마나 예민해요?
따뜻과 따듯을 구별해서 쓰나요?
, 시절인연이 슬퍼요?
계산하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있어요?
, 물건을 잘 버릴 수 있는 편인가요?
언젠간 로봇한테도 유대감을 느낄 수 있어요?
, 그 순간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떠나서 진정으로 힘을 다 짜낸게 맞았나요?
, 본인이 생각하는 꿈은 무엇인가요?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인지.
절대 만질 수 없는 실현 가능성 없는 소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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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어찌저찌 왔더라구요 집에.
급발진 택시와 함께...
같이 마신 K에게 출근 잘 했다고 연락이 왔구요.
저는 소파에서 늘어진 채 해장 커피를 들이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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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안 뜬 채
구겨물고 숨 좀 쉬고,
늘어지는 노래를 틀고
업무를 시작했어요.
오분도 집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스탠드가 켜졌다 꺼졌다.
그렇게 저도 갑자기 메일을 쓰게 됐습니다.
숙취에 찌든 정신과 편안한 마음과 함께.
편안한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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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메일로 술냄새가 전해지진 않겠죠?
숙취가 가시질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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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질문들 어때요? 맛있죠!
다른 또 재밌는 질문 있으면 던져주세요.
진짜 과몰입해서 대답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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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많은 비가 온대요.
작은 우산이라도 항상 챙겨다니시고.
안전 운전 하시고.. 행복하시고...
내일 또 어린이 날인데
여기 어린이는 아무도 없지만
신생아처럼 푹 자는 하루 되길 바라요.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요.
갈게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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