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어요.
놀랍게도 의도된 연출이 아닌,
지난 메일에서의 '그' 24시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
'그'오뎅을 3개나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왔습니다.
신기했어요.
사실 저는 작은 눈송이에게도 놀란답니다.
하늘에서 흰 무언가가 떨어지길래 일단 경계 태세를 잡고 두리번 거렸는데요. 떨어진게 ‘눈’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잘 놀래기도하고, 날씨에 모든 영향을 받으면서도 ‘오늘’의 날씨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기도 하고, 아무래도 11월이잖아요.
전화를 걸었습니다.
- 눈 온다! Z, 너도 봤어?
- 혹시 나와서 같이 눈 볼래?
거절당했습니다.
올해의 첫눈을 로맨틱하게 설계하고 싶었는데.
실패함이 아쉽지는 않아요.
처음은 주관적일 수도 있으니 괜찮다라는 합리화가 나름 작용했고,
그보다 인상깊던 오뎅과 거절의 퇴근길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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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같은 계절 사이에서는
시간 감각이 사라져요.
1월부터 그해가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뭐랄까
진정한 출발은 두꺼운 외투를 벗으면서 인지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오늘의 날씨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겨울이고, 그래서 당연히 추울 것이고, 오늘 내가 입고 싶은 보여지고 싶은 모습은 제가 정하니까요. 시간을 계절로 묶어서 퉁치는 것 같아요.
당연하지 않은 날씨가 올까 봐 무서우면서도-
문득 계절이 뭉뚱그려진 나라에서의 저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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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잤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주 아이가 되어버려요.
저는 초코파이가 좋아요.
정이 좋다는 뜻.
그냥 한 말이구요. 훔친 문장입니다.
저는 안부에 약해요. 어떤 사람이건 저에게 밥은 먹었고, 오늘은 어떻고 부디 우산을 챙겨라.
퍽 흔한 그런 말에서도 저는 착즙기 마냥 ■■을 짜냅니다.
아- 저에게 꿈에는 어떤 게 나왔는지 물어봤다면,
그날부터 밤길 조심하세요!
과거에 대한 질문이 공략인 것 같아요.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보는 것 보다 어떤 걸 먹었고 어떤 맛이었는지. 이상하리만치 뻔하디 뻔한 그 ‘밥’에 약해요. 초코파이가 좋다고 말했듯이.
다시 생각해보니까.
상투적인 질문이어도, '물음'에서 애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에게 질문이 없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어도 입이, 아니 엄지 질이 향하지 않거든요.
할 수 없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다르지만.
제가 생각한 물음은요.
갈고리로 널 낚겠어.
너의 작은 부분도 남김없이 캐내겠어.
너가 궁금해.
막상 저도 저렇게 질문하진 않으니까요. 안심하세요.
그냥 떠오른 생각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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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없는 ■■을 즐겨요.
답변이 오지 못하기에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상에서 시작해서 이상한 관계로 끝나는 거에요.
쟤는 나한테 왜 저럴까?
약간의 틀어짐이라도 생긴다면 전 도망가버립니다.
제가 생각한 아바타 혹은 롤
그 상태에서 남아주시면 되는 거여요.
이기적이지만, 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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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진짜 ■■ 얘기 그만하고 싶은데
어떡해요? 어떻게 해야해요?
웃기게도, 대략 글을 쓴지 8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항상 같은 단어로 이야기하는 것에 의문이 든다면 어떤 파개책을 찾아야할까?
혹은 타협, 혹은 회피.
to. you
- 무엇을 해야 생각을 멈출 수 있어요?
- 왜 그만 이야기 해야하는 거죠?
- 강조되고 반복되는 소리를 불안해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도망치는게 특기거든요.
대화를 통해 생기는 에너지를 통해 가는 자동차라던가-
(그레이쥬스라는 작가님께서 그리신 그림)
고양이를 너무 사랑해서 머릿털이 고양이와 연결되는 그 속의 눈이라던가-
(장콸 작가님의 고양이와 여인의 그림)
과 같은 ■■을 그리고 싶네요.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이해될 수 있는.
단어가 겹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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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망의 해체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최대한 난해한 제목을 짓고싶다는 염원을 통해 나온 것이 고작 피망.
그래서 피망을 해체해서 무엇을? 어떻게? 왜?
무튼 집에 굳어가고 있는 아크릴 물감과,
5년 전부터 창고에 박혀있는 캔버스들이 많으니까요.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디지털이 아닌 원화를 오랜만에.
얘기해드리는 까닭은-
할 일을 공유하는 이유는 말이죠.
말이라도 안 하면, 아예 시작할 이유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동기'는 강하면서도 묽어서,
언젠간 희석되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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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습니다.
다시 코로나가 유행이더라구요.
우리 모두 이번만큼은 트렌드에 뒤쳐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누구한테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도합니다.
이상하게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 뒤쳐지는 삶!
그럼에도 요상하게 만족스러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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