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는 나열로
시작을 하자면,
저는 서울을 좋아해요.
서울의 경도는 동경 127도 래요.
제 생일은 1월 27일 이에요.
그래서 운명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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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 페이지쯤 왔을까
가끔 고민하곤 한답니다.
메일을 보내는 지금, 2023년 1월 27일.
시간을 길게 늘어뜨려 세보면 8,402p 쯤 온 것 같은데요. 매 순간이 명확히 서술될 순 없으니 희미한 어렸을 때 기억을 한 3,000p 정도 빼고, 무의미하게 목적없이 앉아있던 중고교 시절은 한.. -1,000p. 또 막 성인이 되었을 시점에는 새로운 경험들이 많았으나, 술먹고 정신 나가 있던 적이 많으니.. 한 -400p.
*
대략 남은 4,000p를 생각해봤을 때, 그 중 글을 쓰겠다 마음먹은 순간부터 쓰고있는 지금까지 대략 2,500p 정도 사용한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페이지를 신경쓰길 시작했지? 고민하던 2021년 8월 3일 화요일.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Notion을 새로 만들었어요. 제목은 [자서전과 내가 써보고싶은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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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질문
To. mama & papa
· 왜 저는 알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 왜 제가 태어난 날 땅이 갈라지지 않았죠?
· 평범해서 감사하지만, 비범함을 왜 스스로 만들어가야해요?
저의 자서전 첫 페이지에는 신화같은 문장이 써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첫 문장을 읽는다면 궁금해서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엄청난 문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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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보통, 어린시절에는 스스로 쓸 수 있는 문장이 없더라구요.
준비된 것만 잡을 수 있는 돌잔치처럼 말이에요. 타인이 단어를 골라줘요.
책상에 버티컬 마우스가 있었다면, 그걸 잡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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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27일, 오후 10시 30분 우렁찬 울음소리와 건강한 공주님이세요! 라는 말을 들으며 행복해하시던 우리 여사님.
그 순간을 감히 돌아봤을 때
참 감격스러우면서도 약간은 아쉬웠지만
다행히 현실과 설화를 구별할 수 있기에, 그저 망상에서 그친 채.
오늘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했습니다. (휴)
_ 개연성 ;
아마 그럴 것이다
아쉬운 탄생설화를 뒤로한 채,
제가 꾸려나갈 순간들은 나름대로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계획했습니다.
*
그런데, 어느날 새로운 능력을 하나 얻었는데요.
정말 철저하게 제3자의 입장에서 저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다, 앞으로 살아가고픈 방향을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니 제가 현재 작가와 캐릭터를 넘나드는 그 경계에 서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채 캐릭터 ‘예원’이 등장하는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의.
*
정말 어느 순간,
작가 예원과 캐릭터 예원 두 개가 분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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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예원 say; ]
사소하게는 길을 걷다 캐릭터 예원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 때, 빗소리 Bgm을 찾아서 틀어줍니다. 시원한 소나기가 내린다면 조금이라도 감춰질텐데- 가여워하는 마음과 극적인 분위기 연출로 독자들의 몰입을 돕기 위해서 말이죠.
혹여 캐릭터 예원이 즐거운 일이 생겨 방방 뛰고 있을 때는, 이렇게 행복한 일만 가득한 글을 끝까지 읽고 싶을까? 여기서 새로운 도전과제를 부여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야 겠다 다짐해요.
*
그러나 이야기의 모든 일이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가진 않더라구요.
캐릭터 예원에게 쓰러질 것만 같은 큰 고난이 온다면, 그리고 그 고난을 작가조차 어찌할 수 없다면. 작가 예원과 캐릭터 예원이 합심해서 기도합니다.
이 글을 읽는 적어도 한 명은 간절하게 이 캐릭터가 행복하길 응원할텐데, 심술궂은 또다른 누군가가 고난만 주고 싶다가도? 그 한 명 때문이라도 여론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해결책을 찾는 모험을 제시할거야. 그 챕터만 끝나면 괜찮을거야.
아마 그럴 거야.
_ [작가 예원 say ;]
“생일만큼은 서울에서 도망치거라-”
캐릭터 예원은 여느때처럼 맥세권에 감사해며 맥모닝으로 실리콘밸리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점심을 대충 챙겨먹고- 말차향 가득한 도넛에 초를 부는. 그런 일상적인 생일을 기대했대요.
*
작가인 제가 봤을 때는, 이번 기념일은 특별하게 보내야 하거든요.
캐릭터 예원이 써둔 메모장을 뒤적이다 깨달았어요. 어디든 떠나보내야겠구나.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도전과제와 함께, 낯선 공간으로.
스스로 부여한 말도 안 되는 127, 127 운명에서 의미를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떠나서 뭘 할 거냐구요? 소재를 쌓아오지 않을까요.
_ 예원이 잘하는 건
참는 것, 그리고 계속 하는 것
지난 메일 중, 모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떻게 살고싶냐”라는 물음을 공유드렸었는데요.
많은 분들께서 “그래서 너는?” 또다시 물어주시더라구요.
합쳐진 예원의 답변, 들려드릴게요.
*
말하면서 살고 싶어요.
물에 빠졌을 때, 입으로 구출받는 삶을 기대해요.
글을 유려하게 잘 쓰지도, 엄청난 소재로 관심을 끌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해보렵니다. 제가 못한다는 걸 스스로 눈치채 고통스러워도, "아마 그럴 것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잘 버텨냅니다. 그리고 계속 하는 거예요. 제 페이지는 끝나지 않으니까요.
* , 웃기겠지만
셀프 영웅화시키는 글을 포기하지않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여기 혹시 알에서 태어나신 분 계세요?
저도 탄생설화 없는 just 예원일 뿐이예요. 저 또한 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알고 싶습니다.
조정석마냥 ‘세 글자’ 외치고 싶지만 참아볼게요. (대참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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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To.
계속 말했지만, 저 오늘 생일인데요.
당당하게 생일 선물을 요구합니다.
1. 저에게 필요한 경험을 주세요.
2. 처음 듣는 단어를 계속 들려주세요.
3.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세요.
* 갑작스럽겠지만 이렇게 예세이 시즌 2를 마무리 합니다.
새로운 이야기와 장소를 엮어 돌아오겠습니다.
몸 건강히 지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요.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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